다 쓴 치약

다 쓴 치약-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꼭 새 치약 분량 만큼이었습니다.

8월 8에 집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뒤에, 한달간 세크라멘토-멤피스-아틀란타를 방문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성준이의 대학 입학식에 참여하고, 한인교회 교인집에 머물면서 아들의 미국 정착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속한 YWAM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남미의 코스타리카에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을 떠날때 가져왔던 새 치약을 거의 다 썼습니다.

지난 한달간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고 또 풀었다가 다시 싸고...이러기를 5번....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양치질을 참, 열심히 했습니다. 없어지는 치약만큼 아들과 함께 할수 있는시간도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모든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들 대학이 있는 멤피스에 머무는 동안, 주위에 신앙적으로 도움을 받을수 있는 분들과 교회를 알아보고, 필요한 여러 물품등을 사주고 아들이 새로운 환경으로 잘 적응할수 있도록 정서적, 영적인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들과 진지한 대화도 하고, 미래의 꿈들도 이야기 하고, 저의 어릴적 시절을 이야기 해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이번 여행중에 기뻤던 일은 한미 장학재단에서 성준이가 장학금을 받은 일입니다. 주로 교포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인데, 성준이도 받습니다.

아들이 저희 품을 떠나 독립된 시간을 이렇게 준비 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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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이의 졸업

성준이의 졸업

2001년, 2살때 캄보디아에 왔던 성준이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아들 성준이는 늘 저희 가족의 자랑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이번에 졸업한 학교는 성준이가 3살반 부터 15년을 다닌 곳입니다. 이곳에서 잘 다듬어진 신앙을 배웠고, 좋은 모델이 되어준 선생님들을 만났으며, 평생 함께 할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자녀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세워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하면서 우등상과 함께 성적이 우수하고, 신앙이 성숙하고, 리더쉽이 있는 학생에게 주는 학교장 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내내 참여했던 연극반 대표로 상도 받았습니다. 
또 미국에 있는 Rhodes college 에 4년 장학생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외국 대학에 자녀를 보내는 것이 학업 성적뿐 아니라 많은 것이 필요한 과정인데, 하나님께서 공부를 할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성준이는 "국제 관계"를 공부하고 싶어합니다.
선교지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한 경험이 아들의 삶에 큰 재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로서 자녀를 위해 할수 있는 것은 "기도"와 "아이와 함께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매일 자기전 기도해주며, 아들의 생각과 감정을 공감해주며, 그리고 아들이 자신의 꿈을 세워 갈 수 있도록 함께 해 준 것이 저에게는 큰 행복입니다.

" 커서 아빠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 아빠는 늘 저를 공감해주셨어요. 힘들때 함께 해주셨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제 기억에는 아빠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아들이 저에게 써준 편지 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받아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들과 공유할수 있었다 생각하니 기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아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공부하러 미국으로 갑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떠날 준비를 챙기기에 바빴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아버지로서 아들을 보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잘 자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음력 12월 12일

제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태백으로 그날은 몹시 추운 겨울 새벽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산기가 있어서 모든 식구가 기다리는데, 새벽까지 나오질 않았다고 합니다. 새벽 5시쯤, 아버지께서는 잠깐 밖에 나가시고, 할머니도 밤새 기다리시다가 화장실에 잠깐 가셨는데, 바로 그때 제가 나왔습니다그때 방이 얼마나 추웠는지 문 쪽에 있던 걸레가 얼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추운 날 난방도 안되는 방에서 출산을 하셨던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리고 밤새 추위 속에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셨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

94 이신 저희 할머니께서는 47년 전 그날 새벽을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시고, 제가 태어날때 상황을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주십니다. 아마 수백 번은 들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들을때 마다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새벽 추위를 무릎쓰고 오랜 산통 끝에 저를 낳아주셨던 어머니... 함께 산통을 느낄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는 산통만큼의 부담을 가지며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셨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의 끈으로 가족을 묶어 주시고, 평생을 이야기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 를 태어나는 그때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사랑의 이야기" 언제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가족들 마음 안에 남아있습니다. 감동과 흥분되는 마음은 이제 저희의 자녀까지 전해져서 4대째 믿음의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이 시작되는 ...이것이 우리 생일이라 생각합니다. 축복의 인사를 주신 모든 분들께 사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내 마음의 열쇠

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요즘 말로 하면, 기러기 가족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직장이 태백에 있는 관계로, 부모님은 저와 형님을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4, 6학년인 두 형제가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생활을 했었는데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지냈습니다.

제가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요즘은 아이의 나이에 맞는 각기 다른 소통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성준이와는 저녁 식사 이후 저녁에 방에서 같이 공부하기, 한참 모험심이 강한 둘째 아영이와는 장기, 바둑을 두거나 알까기 하기, 고장한 전자제품 함께 분해하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한창 글을 배우는 막내 아름이와는 함께 책을 읽어 주면서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40
년 전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했던 저의 기억들이, 이제는 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회복이 되고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막내 아름이가 오늘 저녁 따뜻하게 안기면서, 
"아빠 마음에 들어가고 싶어. 비밀번호가 뭐야 ? " 하길래 
안아주면서 "비밀번호는 I LOVE YOU"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름이는 마음의 비밀번호는 "공주" 니까 
"아빠도 마음에 들어와" 라고 합니다.

1월 모두 안녕하세요 ?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2014
년이 시작된 지 20일이 지났습니다. 한국은 춥다고 하던데 캄보디아도 이상기후로 춥습니다아침 저녁에는 20 가까이기온이 떨어지고 바람도 불어서 저희는 추위를 느낍니다. 날이 이렇다 보니, 아들 성준이와 저는 심한 감기에 걸려서 1주일 넘게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아플 때는 근육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뎅기열이 아닐까 할 정도였습니다
다행이 뎅기는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엊그제에는 모기를 잡다가 침대에 발이 걸렸는데, 하필이면 엄지발가락이 세게 부딪혀서 발톱이 깨져서 빠지기 직전까지 가는 혈투가(?) 있었습니다.

정말 아프더군요이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아픔이고, 아픔의 정도는 측정할 수 없는 그런 아픔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집안 청소하는데, 발톱 상처 때문에 무릎을 꿇고 청소를 하다가 양쪽 무릎에 화상을 입었습니다...얼마나 집을 깨끗이 닦으려 했는지 마음을 아시겠죠 !!!!
마음은 그랬는데, 상처는 깊에 남았습니다.

... 1월이 빨리 지나가기를..
1
모두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장기 한판

둘째 아영이와 장기를...

아영이에게 장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번, 두 번 가르쳐 주고 번은 져주기도 하고...
그러다가 한 번은 져주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이겨버렸습니다
이때 아영이가 얼마나 서글프게 울던지...

"나는 움직일 자리가 없는데, 아빠는 계속 장군이요 하니까 속상해" 하면서 30분을 울더군요. 그런데 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러다가 저녁에 다시 장기를 시작했는데, 실력이 몇 시간 만에 일취월장..., 제가 두번을 내리 졌습니다. 아영이가 장기를 배워가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